플래닛이야기

공존의식 부재의 항공파업 지양돼야

에드워드 동 2006. 1. 2. 16:26
 

최근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으로 많은 항공기 이용자들과 수출업계에선 비상이 걸렸다.  우리는 이번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또다시 지난 여름철 아시아나항공의 25일간 전개된 항공파업 대란의 재연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으로 가슴을 조였다. 그러나 정부의 긴급조정권을 발동으로 인해 항공대란은 막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노사간 갈등의 골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필수공익사업 제정 교통대란 막아야


정부는 지난 6월 아시아나항공 파업에 이어 금번 대한항공 파업도 잇따른 긴급조정권 발동으로 사태를 일단 마무리 했다. 물론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시기가 연말 수출성수기와 맞물려 대외적인 신인도와 수출업계의 고충 등을 고려했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매년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 버스, 지하철, 항공사의 파업에 긴급조정권 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건 너무 궁하지 않는가. 따라서 차제에 이러한 문제점을 풀기 위해서는 항공, 철도, 버스 등 필수적인 교통수단의 파업을 원천 봉쇄하는 필수공익사업을 지정하는 강력한 입법조치가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저항과 반발로 다소 시끄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경제 발전과 국민의 편리한 교통수단 이용을 위해 필수공익수단 지정을 반드시 관철해야 하겠다. 매번 반복되는 교통대란을 연례행사처럼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정신 부재


우리는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고 또 듣는다. 이 말의 의미처럼 사회를 주도하는 인사들은 자신의 격에 맞는 높은 도덕적인 행동을 할 의무가 있어 타인에게 ‘본’을 보여야 한다. 그렇다면 스스로 그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자신의 행동과 말 한마디가 어떠한 파장이 몰고 올 것인지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금번 항공파업을 주도한 조종사들은 회사에서 받고 있는 혜택에 대해 너무 쉽고 안이하게 보는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직원들이 연봉 2천만원도 못되는 돈으로 하루 적정 근로시간이 8시간을 훨씬 넘는 노동을 제공하며 땀 흘려 일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경기 흐름도 그렇게 좋지만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국가 사정을 고려, 설령 자신의 처우개선에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을 지라도 파업이라는 극단의 행동을 취해 국가와 사회에 막대한 재정적인 손실을 초래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금번 항공파업을 일으킨 조종사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해당하는 지 정확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적어도 1억대의 고액연봉자인 만큼 일단 경제적인 수입면에서 근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자신보다 더 못살고 어려운 근로자들도 박봉에 허리를 조이며 살고 있는데 꼭 그렇게 파업으로 그릇된 모습을 보여야 했는지 실망스럽다. 만약 사측이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었더라면 파업을 강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변할지 모르겠으나 그러한 주장은 명분과 설득력이 없어 너무도 공허해 보인다. 꼭 그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켜야만 했었는지 한번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조종사 노조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조금만 살렸더라면 파업으로 인한 따가운 질책과 경제적인 손실을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대화와 타협정신 배양 힘써야


금번 대한항공사측과 노측의 팽팽한 대립으로 파업을 감행, 2천여억원이 넘는 커다란 손실을 초래하고, 그것도 정부가 개입해 조기봉합된 현실은 너무도 암울하다.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은 노사간 협상력 부재는 안타깝다고 하기 보다는 너무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살면서 의견 대립시 협상으로 충분하게 해결될 일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이는 우리 정서가 한마디로 대화와 타협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그 저변에는 주입식 일변도의 우리네 교과과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지금 우리 학교교육의 전과정을 통해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이 전혀 실시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초중고교 교육과정에서 학생 개개인이 얼마나 발표를 하고 토론의 장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는가. 또 다른 학생의 의견을 청취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를 경우 어떠한 논리적인 대응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따져보면 우리는 보다 많은 시간을 발표와 토론에 할애하야 함을 느끼게 된다.

 

실제 우리들 대부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폭넓은 사고를 통해 다각적으로 분석해서 해결하는 훈련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제기되면 어떻게 풀어나갈지 쉽게 방향감각을 잊고 만다. 이러한 취약성은 달달 외워서 고스란히 전사(傳寫)하는 주입식 교육에 따른 폐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시스템에서 성장한 사람은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편협된 인식을 소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와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은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발상으로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어떤 쟁점 사항에 대해 보다 넓은 포용력으로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파업이란 파국으로 가기 전에 좀 더 유연하게 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우리 사회는 이번 사태에서 보듯 아직도 주어진 쟁점 사항에 대해 충분한 토의를 진행 대화하고 타협하는 정신의 배양이 절실하게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