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어른
어제 장인어른께서 많이 편찮으셔서 충대병원에 입원을 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오늘 병원에 문병을 갈려고 우리집에서 저녁 9시에 출발을 했다. 그런데 중부고속도로에서 차가 너무 막혀 1시 30분에 병원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2배가량 더 걸린 것이다. 주말에다 어린이 날까지 낀 황금연휴가 있으니 차가 막힐만도 했다. 그렇지만 너무 차가 막혀 운전대를 잡고 고생이 많았다. 동서울에서 음성까지 거의 10km/h 도 못달렸으니 체증이 극심했다. 1시가 다 되어서 심각한 교통체증이 플렸는데 그래도 도로가 뻥하고 뚫리니 다행이었다.
병원에 가니 장모님과 큰처남이 병원에서 간호를 하고 계셨다. 장인어른은 산소호흡기를 끼시고 주무시고 있었다. 우리 장인어른은 불과 3년 전까지도 농사를 지으셨던 아주 건강하신 분이었다. 지난해도 한차례 충대병원에 응급환자로 입원을 하셨다가 퇴원을 하셨지만 그래도 많이 편찬으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많이 편찮으신 것 같았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하신 모습을 보니까 더 늙어 보이셨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께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계셨던 생각이 교차하니 마음이 안좋았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아프기 마련이고 그러다가 세상을 뜨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병원에서 투병하는 기간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커다란 슬픔에 잠기게 한다.
지금 내수에서 장인어른과 장모님 두 분이 지내고 계시는데 작은 농사 일거리는 장모님이 하시고 논일은 다른 사람이 경작을 하고 있다. 장인어른은 한 평생 농업이라는 힘들고 고된일을 많이 하신 분이라서 이렇게 좋은 세상에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하는데 걱정이다. 이번 입원은 아주 위중한 상태는 아니지만 체력이전보다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안쓰러워 보였다. 워낙 늦은 시각에 도착한 터라서 우리들은 가볍게 문병하고 내일 다시 병원을 찾기로 하고 내수로 향했다. 내수에 도착하니 2시 30분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씻고 곧 잠을 청했다.
우리는 살면서 항상 그자리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커다란 나무가 너무도 부러울 때가 있다. 바람이 부나 눈이오거나 덥거나 춥거나 항상 꿋꿋하게 변함없는 나무가 든든하고 믿음직 스럽다. 우리의 가족 특히 부모의 경우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녀들을 보살펴 주시는 역할을 하시기에 나무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부모님이 아프셔서 생명의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우리들을 너무도 당황하게 만든다. 항상 부모라는 자리에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주실 것 같은 분들이 힘없이 병마에 시달리시는 나약한 모습을 보노라면 너무도 서글프고 안타깝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니까 마음이 더욱 아프다.
장인어른의 병세가 하루빨리 호전돼서 좋은 세상에 더 많은 것들을 보시고 즐겁게 더 오래 사시기를 빌어본다. 처갓집에 가면 이따끔 막걸리 한 잔을 놓고 장인어른과 세상이야기를 했던 지난날들이 뇌리에서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아 착잡하다. 장인어른은 농사를 지으셨지만 정치와 사회에 대한 시각이 넓으신 분이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었다. 장인어른은 그러시던 분이었는데 지금은 본인의 의사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시고 계시니 참으로 안타깝다. 부디 쾌차하시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