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김장담그기

에드워드 동 2011. 11. 19. 17:00

새파란 배추들이 들녘 밭고랑에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서있네

마냥 밭에서 친구들과 웬종일 수다를 떨면서 그렇게 보내고 싶은데

이런 작은 소망조차도 조석으로 차가워지는 날씨 때문에 접어야 한다네

이제 친구들과 이별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네

아직 아쉬움도 많이 남아있지만 사람들의 겨울식탁을 위해서 떠나야 한다네  

 

우리들은 농부의 익숙한 손길에 의해 뽑아져서 들것에 실려 마당으로 옮겨졌네

마당에 수북하게 쌓인 우리들, 오늘은 우리 모두가 새로운 변신을 시작하는 날

감싸고 있던 떡잎은 떨어져 나가고 나의 배는 두동강나 속살이 얼굴을 내밀었네

순간 나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이런 민낯을 보여주기가 쑥스러워 머뭇거리네

이렇게 고민에 빠진 나의 노란 속살이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가득하게 품는다

사람들은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예뻐 보이는 내 모습과 살내음을 맡는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내 모습을 드러내기가 너무도 부끄러워  

 

마당에 두동강나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보니 친구 무우도 우리 곁에 다가왔네

싱싱하게 쭉 뻗은 무우청 머리가 단숨에 싹뚝 잘리어서 한 곳에 수북하게 쌓이네

무우청으로 가려졌던 머리가 깍이니 반질반질한 머리가 햇살을 받아 더욱 빛나네

날씨도 차가운데 이렇게 머리를 밀어버리니 나는 시원함을 넘어 한기가 느껴진다

이러한 한기를 잊으려고 우리들은 저마다 목청을 돋구워 몸부림치며 절규를 하네 

이런 우리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커다란 들통 물속으로 마구 던져지네

아! 날씨도 이렇게 쌀쌀한데 내가 물속에 들어가게 될 줄이야 정말 꿈에도 몰랐었네

빨간고무장갑을 낀 사람들의 우악스런 손이 내몸 구석구석의 묵은때를 씻어내네

춥기는 하지만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깨끗히 목욕을 하게돼서 개운하다.  

 

눈이 부실정도로 새하얀 속살을 드러낸 나의 우아한 나신에 흠뻑 취해 버렸네

사람들은 도마 위에 나를 올려놓고 사정없이 후려쳐서 토막 토막 내어 버렸다

수북하게 쌓인 나의 잔해는 잠시 후 양념장 통에 넣어져 마구 뒤섞어 버리네

그렇게 버무려진 내 이름은 깍두기, 사람들은 날 입에 넣고 아삭아삭 씹는다

우리들은 이렇게 먹거리로 변신해 사람들의 입맛을 돋궈주니 얼마나 좋은가?  

 

새하얀 보석들이 내 몸의 한켠 한켠을 넘기며 구석 구석에 우수수 떨어지네

아! 조금 짠 맛이 나는 이 물질에 의해 몸에서 탈수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아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몽롱해지면서 점점 나의 몸은 쪼그러들기 시작하네 

지금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하느라고 별 수단을 다 동원해도 효과가 더딘데

나는 하룻밤 사이에 몸집과 체중이 이렇게 절반으로 확 줄어들어 버렸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물로 샤워를 시키고 다시 채반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네

나는 물기가 말끔하게 가신 다음 얼마후 빨갛게 버무려진 양념통에 넣어졌네

나는 고추와 새우젓, 마늘, 생강, 파, 무우채와 함께 붉은 옷으로 갈아 입었다네

이렇게 나는 새파란 배추에서 맛좋은 김치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을 마쳤다네

나는 이제 플라스틱통과 김장독 안으로 들어가 겨우네 아주 깊은잠을 원없이 잘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