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에 잠든 '박영석 대장, 신동민ㆍ강기석 대원’
“ 세상의 주인은 따로 없다.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이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었다.”
위의 글들은 박영석 대장이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통해서 밝힌 말들이다. 이러한 그의 말을 통해 산악인 박영석이 평소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을 통해 세계적인 산악인다운 면모를 읽을 수 있는데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음에 마음이 아프다.
‘박영석’ 그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8000m를 넘는 고봉 14좌를 완등하고, 7대륙 최고봉과 남극과 북극 등 세계 3극점 탐험에 성공한 철인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의 우리나라 대표적인 산악인이다.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극한의 상황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도전정신을 다시금 볼 수 없게 된 것이 너무 슬프다. 정녕 우리는 또 이렇게 세계적인 산악인을 허망하게 잃어야 하는 것인가? 실종 하루 이틀이 지났을 때만해도 박영석(48) 대장과 신동민(37)ㆍ강기석(33) 대원들이 살아서 돌아올 것만 같았다. 눈사태가 났어도, 크레바스에 빠졌어도 그들이 생존하고 있다는 낭보를 그렇게 기다렸건만 ‘실종’이란 소식의 메아리만 나의 귀전에 맴돌 뿐이었다. 히말라야는 아쉽게도 ‘박영석원정대’의 생환이라는 기적은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금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코리안 루트’ 개척을 위해 박영석 대장과 같이 나섰던 신동민ㆍ강기석 대원 또한 박 대장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악인들이다. 그처럼 젊고 패기에 찬 훌륭한 인재들을 히말라야 설산에 영원히 잠들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아무도 가진 않은 길’, 새로운 루트 개척을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진 진정한 산악인들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히말라야 등반은 남들이 간 길로 올라가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등반가들이 히말라야 등정에 나섰다가 눈사태를 비롯한 각종 사고로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도 생명과 맞바꾸는 모험과도 같은 가장 어려운 코스에서 새로운 루트 개척에 나선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용기였다. 그들의 소신에 걸맞게 금번 등반에서 성공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참으로 값지고 훌륭한 등반으로 더욱 빛이 났을 것인데 불의의 조난으로 의지가 꺾이게 돼서 안타깝고 아쉽다.
지난 11월 3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코리안 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불의의 조난을 당해 실종된 박영석 대장, 신동민ㆍ강기석 대원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 1층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이 자리에는 ‘박영석원정대’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이한구(44)ㆍ김동영(33) 대원들도 초췌한 얼굴로 참석했다. 이들은 영결식이 거행되는 동안 내내 떨군 고개를 한 번도 들지 못했다. 불의의 사고로 잃은 동료를 생각하는 애절한 마음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리라. 그러한 그들의 모습에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이들은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ㆍ강기석 대원들을 구조하기 위한 수색작업에서 생명의 위협도 무릅쓰고 앞장서서 최신을 다했다고 한다. 잃어버린 동료를 찾으려는 그들의 소망이 너무도 절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해가 간다.
이한구ㆍ김동영 대원이여!
당신들 또한 우리 모두의 영웅입니다. 비록 지금은 동료를 잃고 살아남아 진한 죄책감과 충격에 젖어 있겠지만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슬픔과 죄책감에 더 이상 빠지지 말고, 이제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앞에 놓여진 현실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버텨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에게는 또 다른 소중한 임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서간 박영석 대장, 신동민ㆍ강기석 대원, 그들이 이루지 못한 코리안 루트를 다시 도전해서 개척해 내는 값진 일을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서 앞서간 동료들의 영전에 당당하게 바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한구ㆍ김동영 대원, 두 분은 이제 힘을 내시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우리 산악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금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러 나섰다가 조난을 당해 실종된
박영석 대장, 신동민ㆍ강기석 대원이여!
이제 히말라야 설산에서 평안히 쉬시기 바랍니다. 그대들의 지치지 않는 무한도전 정신은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웅 세분은 눈 속에서 피는 에델바이스와 같이 고귀하고 빛나는 존재들입니다. 비록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했지만 당신들이 추구했던 드높은 이상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와 함께 영원히 지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산 사나이 ‘박영석ㆍ신동민ㆍ강기석’ 세분의 명복을 빕니다.